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교 사회주의 (문단 편집) == 관련 인물 == * [[쑨원]]: 오랜 사회주의에 대한 터부시와 반감, 우익 계열 독립운동가와도 연관성 때문에 한국에선 그가 사회주의자로 인식되지 않는 편이다. 그러나 많은 서구 학자들은 쑨원이 내세운 '''초기 [[삼민주의]]'''는 (보수화된 장제스 이후의 삼민주의와 달리) [[사회민주주의]]적 이상에 가까웠고, 쑨원 자신도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에 우호적인 [[민주사회주의]]자였다. 다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'''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(민주)주의'''자로 분류되는 편이다.[* 반공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고 당시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식 사회주의 혁명은 커녕, 자본주의도 제대로 못 되는 반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이다. 20세기 역사를 돌아보면 (반)식민지, 반봉건(혹은 반자본주의) 상태에서는 우선은 반제국주의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혁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.] * [[장제스]]: 국부천대 이후에는 전형적인 보수적 독재자에 불과하긴 하지만, 대륙 시절에는 반공적이면서도 반제국주의,반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사상에는 상당히 공감했던 인물이였다. 실제로 장제스는 레닌주의에도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었고, [[장제스주의]]도 서구권에선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. * [[캉유웨이]]: 그는 기본적으로 왕당파이자 중국의 전통 가치를 지지한 유학자로 보기도 하나 자본주의를 사악하고 비도덕적인 사상으로 간주한 [[반자본주의]]자였다. 마냥 반동이라고만 보기 힘든 지점도 있는데 캉유웨이의 경우 서양식 기술 발전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이였으며 기술 발전을 통해 미래 사회의 각 개인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일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. 특히 그는 [[사회주의]]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, 로랜스 톰프섬 등 학자들은 캉유웨이가 지향한 사회주의가 중국 전통의 이상적 가치들에 기반했다고 평가했다. * [[펑유란]] * [[호찌민]]: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였지만, 본인 스스로 식민지 해방운동의 지원을 받기 위해 뛰어들었다 고백한 바 있다.민족주의 성향과 농민 출신이던 [[마오쩌둥]]과 개신교 집안인 [[김일성]]과 달리 집안이 유학자 가문이어서, 어느 정도 유교적인 성향을 띄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